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개중에는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할 만큼 비호감 유형도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대학 졸업 후 입시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1년 정도 일할 때였다. 그 학원은 '멧돼지'라는 별명의 50대 중반 여자 원장이 운영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케이크를 선물해 왔다. 원장은 케이크를 냉큼 받아들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한참 지난 후 반쯤 먹다 남긴 케이크를 강사들에게 툭 던지듯 건네며 말했다.
"이거 선생들 먹어. 맛있네."
원장은 나만 보면 애인의 존재 여부와, 더 나아가 애인과의 결혼 계획까지 집요하게 물었다.
"그게 왜 자꾸 궁금하냐"고 대꾸하면 원장은 말했다. "경험상 여자 선생이 결혼하면 학원을 바로 관두거든."
그 학원엔 40대 초반의 남자 수학 선생이 있었다. 남자치고 왜소한 체격의 착하고 말수 적은 분이었다. 어느 날 수학 선생이 없는 직원회의 자리에서 원장은 말했다.
"수학 선생이 나한테 10만원만 가불해달라고 하더라고. 여자친구 생일선물 해 줄 거라면서. 내 참 우스워서!"
얼마 전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상기된 표정으로 원장실 주변을 서성이던 수학 선생의 얼굴이 생각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순간 거대한 배를 내밀고 돼지 멱 따는 목소리로 웃어대는 원장이 정말 멧돼지로 보였다.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원장이라면, 가족 같은 직원을 아껴주려고 했을 텐데.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저렇게만 살지 않는다면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되는 지점에서 호감형 인간의 조건은 만들어진다. 그 학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134.html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전영규 문학평론가
입력 : 2018.01.18 03:03
'시사&설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튼, 주말] 600년 넘게 흉지설 시달려… 청와대 터는 억울하다 (0) | 2019.02.03 |
---|---|
[스크랩] "현송월 가까이서 모셔라" 눈발 날리자 우산 받쳐든 국정원 (0) | 2018.01.24 |
[스크랩] 적폐청산이 복수극이 안 되려면 (0) | 2017.11.13 |
[최보식이 만난 사람]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이 난도질당해… 역사의 罪人처럼 만들어" (0) | 2017.11.09 |
[정민의 世說新語] [374] 팔십종수(八十種樹) (0) | 2017.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