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설說

[일사일언] 어른의 조건

유유(游留) 2018. 1. 18. 10:02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개중에는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할 만큼 비호감 유형도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대학 졸업 후 입시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1년 정도 일할 때였다. 그 학원은 '멧돼지'라는 별명의 50대 중반 여자 원장이 운영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케이크를 선물해 왔다. 원장은 케이크를 냉큼 받아들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한참 지난 후 반쯤 먹다 남긴 케이크를 강사들에게 툭 던지듯 건네며 말했다.


 "이거 선생들 먹어. 맛있네."


원장은 나만 보면 애인의 존재 여부와, 더 나아가 애인과의 결혼 계획까지 집요하게 물었다.
 "그게 왜 자꾸 궁금하냐"고 대꾸하면 원장은 말했다. "경험상 여자 선생이 결혼하면 학원을 바로 관두거든."


그 학원엔 40대 초반의 남자 수학 선생이 있었다. 남자치고 왜소한 체격의 착하고 말수 적은 분이었다. 어느 날 수학 선생이 없는 직원회의 자리에서 원장은 말했다.


"수학 선생이 나한테 10만원만 가불해달라고 하더라고. 여자친구 생일선물 해 줄 거라면서. 내 참 우스워서!"


얼마 전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상기된 표정으로 원장실 주변을 서성이던 수학 선생의 얼굴이 생각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순간 거대한 배를 내밀고 돼지 멱 따는 목소리로 웃어대는 원장이 정말 멧돼지로 보였다.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원장이라면, 가족 같은 직원을 아껴주려고 했을 텐데.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저렇게만 살지 않는다면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되는 지점에서 호감형 인간의 조건은 만들어진다. 그 학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134.html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전영규 문학평론가

입력 : 2018.01.18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