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설說

[정민의 世說新語] [364] 산인오조(山人五條)

유유(游留) 2016. 5. 6. 20:31



1600년(가정 17년) 소주(蘇州) 사람 황면지(黃勉之)는 과거 시험을 보려고 상경하던 중이었다. 길에서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를 지은 전여성(田汝成)과 만나 화제가 서호(西湖)의 아름다운 풍광에 미쳤다.
황홀해진 그는 시험도 잊고 그 길로 서호로 달려가 여러 달을 구경하고서야 그쳤다.

전여성이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산사람(山人)이오." 그러고는 산사람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목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첫째는 산흥(山興)이다. 산 사나이는 "산수에만 탐닉하여 공명(功名)을 돌아보지 않는다(癖耽山水 不顧功名)." 산에 미쳐 산에만 가면 없던 기운이 펄펄 난다.

둘째는 산족(山足)이다. "깡마른 골격에 가벼운 몸으로 위태로운 곳을 오르고 험지를 건너간다. 번거롭게 지팡이와 채찍을 쓰지 않고도 오르내리는 것이 마치 나는 것 같다(瘦骨輕軀 乘危涉險 不煩 策 上下如飛)." 산을 타는 기본 체력을 갖추었다.

셋째는 산복(山腹)이다. "맑은 풍광을 목격하면 문득 취한 듯 배가 불러 밥은 하루에 한 끼면 그만이고 물은 하루 열 번만 마시면 된다(目擊淸輝 便覺醉飽 飯才一溢 飮可曠旬)." 체질 자체가 산행에 최적화되어 있다.

넷째는 산설(山舌)이다. "산의 형세를 말할라치면 형상의 오묘함을 낱낱이 묘사하고, 산수의 빼어난 곳을 깊이 음미하여 시로 읊으니 마치 역아(易牙)의 요리에 입에 침이 흐르는 것과 같다(談說形勝 穷奥妙 含腴咀隽 歌咏 若易牙調 口欲流涎)." 유람한 산수를 꼼꼼한 기록으로 남기는 근면함을 갖추었다.

다섯째는 산복(山僕)이다. 복(僕)은 하인을 말한다. "뜻이 통하는 하인이 싫다 않고 따라오며 기이한 경치를 찾아내고 숨겨진 곳을 들춰내어 주인에 게 알려준다(解意蒼頭 追隨不倦 搜奇剔隱 以報主人)." 표정만 보고도 뜻이 통하는 조력자가 있다.

산에 대한 흥취, 산을 타는 체력, 산행에 최적화된 체질, 기록으로 남기는 성실성, 훌륭한 조력자, 이 다섯 가지가 산행에서 요구되는 산사람의 조건이다. 특히 넷째가 중요하다. 명나라 주국정(朱國楨·1558 ~1632)이 지은 '황산인소전(黃山人小傳)'에 나온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