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行禪)
윤제림
신문지 두 장 펼친 것 만한 좌판에
약초나 산나물을 죽 늘어놓고 나면,
노인은 종일 산이나 본다
하늘이나 본다
손바닥으로 물건 한 번 쓸어보지도 않고
딱한 눈으로 행인을 붙잡지도 않는다
러닝셔츠 차림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채질이나 할 뿐
그렇다고 한마디도 없는 것은 아니다
좌판 귀퉁이에 이렇게 써두었다
“물건을 볼 줄 알거든,
사 가시오.“
나도 물건을 그렇게 팔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노인을 닮고 싶은데
쉽지 않다.
- 시집 [새의 얼굴]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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