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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선(行禪)

유유(游留) 2017. 2. 8. 09:56

행선(行禪)

 

윤제림

 

신문지 두 장 펼친 것 만한 좌판에

약초나 산나물을 죽 늘어놓고 나면,

노인은 종일 산이나 본다

하늘이나 본다

 

 

손바닥으로 물건 한 번 쓸어보지도 않고

딱한 눈으로 행인을 붙잡지도 않는다

러닝셔츠 차림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채질이나 할 뿐

 

그렇다고 한마디도 없는 것은 아니다

좌판 귀퉁이에 이렇게 써두었다

물건을 볼 줄 알거든,

사 가시오.“

 

나도 물건을 그렇게 팔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노인을 닮고 싶은데

쉽지 않다.

 

 

 

- 시집 [새의 얼굴] (문학동네, 2013)


출처 : 유유산방
글쓴이 : 유유(留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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