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과 봉화 일대의 양반가를 꼽는다면 대략 30여 집안이 되는 것 같다. 퇴계 선생 밑에서 배운 학연으로 인해 서로 혼사도 많이 하고, 재전(再傳)·삼전(三傳) 제자 간에도 학문적 사승(師承) 관계가 많다.
이 집안들이 300~400년 세월 동안 지연·혈연·학연으로 엮이다 보니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누가 누구 집 자손이고, 누구네 선조가 학문이 높았고, 당쟁을 같이 겪었고, 독립운동을 어떻게 했고, 결정적 순간에 행동을 어떻게 했는가를 서로 간에 잘 알고 있다.
이 30여 집안의 후손들이 21세기 서울의 강남 밥집에서 만나도 수백년 전 이야기가 늘 화제로 오른다.
'당신네 11대조 할머니가 낳은 딸이 우리 집에 시집와서 누구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유배 갔을 때 어떤 문집을 남겼고, 문집을 어느 서원에서 발간하였고, 문집 가운데 어떤 대목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어떤 처신을 하였으며, 그의 제자가 누구이고, 친했던 동기가 누구이며, 거기서 낳은 딸이 또 아무개네 집으로 시집을 가서 낳은 외손자의 6대 후손이 장관을 지냈고, 어느 대학 총장을 한다'와 같은
내용이다. 이게 보학(譜學)이다. 말하자면 양반학(兩班學)이다. 선비 집안 후손들의 특징은 보학에 해박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수백 년 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칫 시대 착오로 흐를 가능성도 있지만, 서로 '남이 아니다'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며, 서로 간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정서적 유대를 만든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어느 누가 돌출 행동을 하면 수백년간 축적된 문중 간의 세교(世交)를 무너뜨리는 일이 되며, 자신은 물론 그 집안까지 함께 욕을 먹는 일이 된다. 선비 집안 후손들은 남의 단점을 쉽게 지적하지 않는다. 덕담을 많이 한다. 자기 자랑을 삼간다. 안동 일대에는 누구누구의 송덕비(頌德碑)를 찾아볼 수 없다. '박기후인(薄己厚人)'이 체질화되어 있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태도가 선비 집안의 가풍이다.
'내로남불'의 반대말이라 하겠다. '내로남불'은 수신(修身)이 안 된 소인배의 전형으로 본다. 다른 데는 저수지 물이 거의 말랐지만, 안동 도산서원 일대는 골짜기가 깊어서 아직 물이 남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31/2017073100059.html
입력 : 2017.07.31 03:16 | 수정 : 2017.07.3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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