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설說

[최보식 칼럼] 현재 權力이 죽은 權力을 야비하게 짓밟는 것처럼

유유(游留) 2017. 7. 26. 10:00

女性 대통령의 침대까지 이제 나온 마당에
앞으로는 朴 전 대통령이 관저에 혹시 떨어뜨린
속옷가지도 등장하면 사람들은 다 혹할 것이다



두 달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방으로 대형 거울에 둘러싸인 방에서 지냈다'는 식의 보도가 확산됐을 때다. 청와대 측은 출입 기자들의 확인 요청을 받자 "노 코멘트"라고 했다. 한마디만 하면 금세 밝혀질 사안이었는데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이 더욱 '적폐 세력'처럼 보이도록 방치하는 듯한, 풍문이 사실로 굳어지도록 내심 즐기는 것처럼도 보였다. 필자가 '박근혜 거울 방에 대한 청와대의 수상한 침묵'이라는 칼럼을 썼을 때 그쪽에서는 이렇게 해명했다. "청와대 관저나 생활 공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보안 규정에 걸리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그런 청와대가 이번에는 '박근혜 침대'를 들고나왔다. 한 언론사 기자에게 "국가 예산으로 침대를 샀으니 정해진 사용 연한까지 써야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직접 쓴 침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쓰기도, 그렇다고 팔기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보안을 이유로 '거울 방'의 사실 여부 확인에는 입을 다물었지만, 관저의 '침대'는 보안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청와대 안에서는 '박근혜 침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그렇게 대단한 과제인가. 이미 몇 차례 정권 교체로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왔다. 그때마다 관저의 침대도 나가고 들어왔을 것이다. 역대 정권 이양(移讓)의 선례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고민'으로 포장해 언론에 흘린 의도가 궁금하다. 여당 전직 여성 의원의 말처럼 "그건 669만원짜리 침대이고 박근혜 국정 농단의 본보기로 전시하자"는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사비(私費)로 새 침대를 들여왔다는 걸 돋보이게 하려는 것인지 확실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 여성 대통령의 침대까지 나온 마당에, 앞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혹시 떨어뜨린 속옷가지 등도 등장할 수 있겠다. 청와대 측이 "감옥으로 직접 전달하기도 그렇고 어디에 보관할 데가 마땅치 않다'며 언론 매체에 슬쩍 흘리면 세상 사람이 다 혹할 것이다.

요즘 진행 중인 박근혜 시절의 청와대 문건 공개도 그렇다. 첫 발표 30분 전에 "방송사들은 생중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기자실에 통지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특종을 터뜨리듯 "청와대 캐비닛에서 이전(以前) 정부에서 생산한 문건을 발견했다"며 세세하게 브리핑했다. 문건 내용을 카메라 앞에 내놓기도 했다. 지금의 청와대는 이전과는 달리 국민 앞에 투명하고 공개적이라는 걸 과시한 셈이다.

이 문서들이 어떻게 캐비닛에 남아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이전의 청와대가 형편없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이 문서들은 즉시 봉인해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는 게 옳았다. 이를 열람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이나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 한다. 권력을 쥔 쪽에서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정치 보복에 이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11일간 이 문서들을 모두 열람했다. 한때 운동권 출신들이 이를 놓고 어떤 작전을 짰을까, 구수회의를 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발표 과정에서 청와대 측은 "문건에는 불법 지시 사항도 포함돼 있었다"며 툭 던졌다. 사본(寫本)은 박근혜 재판을 맡고 있는 특검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청와대의 현행법 위반을 전 국민에게 생중계로 보여준 것이다.

보수(保守)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뼉을 칠 태세를 갖추고 있고, 더 이상 박근혜를 편들거나 연민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의 무능과 공감 결여,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 상태는 상당 부분 드러났다. 박근혜로 인해 상식 있는 보수는 "나는 보수다"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됐다. 점차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현재의 권력이 죽은 권력을 야비하게 짓밟는 것처럼 비칠 때다. 보수가 박근혜에 대해 차분해졌다 해도, 청와대에서 즐기듯이 흘리는 '거울 방' '박근혜 침대'에는 분개한다. 적폐를 청산하는 판관(判官)이 된 양 '청와대 문건'을 공개하거나, 얼마 전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취소하게 만드는 방식은 보수의 속을 다시 부글부글 끓게 한다.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최종 승리가 아니다. 진짜 승부는 국가 운영에서 가려진다. 대통령은 자신을 찍은 지지자들로만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다. 자신을 한때 경계했거 나 반대한 사람들의 동의와 협조도 필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공감 능력이면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어렵지 않고, 청와대 안에 머리 나쁜 참모들만 있을 리 없을 텐데, 왜 늘 치졸한 수법으로 가뜩이나 울고 싶은 보수를 자극하는지 모르겠다. 현 정권은 '촛불 혁명'의 승리라고 하지만, 그런 환호가 단절과 갈등 확산, 새로운 위기의 전조(前兆)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