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暴雪)
오탁번
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모이쇼 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버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이 곡허것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 시집 [손님] 황금알, 2006
'좋은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르면 눈물나는 이름 / 오광수 (0) | 2018.05.30 |
---|---|
살다보니 (0) | 2018.04.05 |
살다가 보면 (이근배) (0) | 2017.11.17 |
사랑은 손님이다 (0) | 2017.10.18 |
[스크랩] 희망 / 나태주 (0) | 2017.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