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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흐르는 눈물

유유(游留) 2019. 2. 3. 12:04

자식을 길러보면 부모 사랑을 안다 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되지만, 왜 다 쏟아주지 못하고 가슴속에 남기셨나도 알게 됩니다.

자식의 머리가 허얘져도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부모님 사랑.

그 숨겨진 사랑이 여전히 목마른 자식입니다.

  

 

주말 오후,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니 그새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아들 녀석이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골 부리는 중이더군요.

게임 때문에 제 엄마랑 또 한바탕 한 걸까요?

웬만한 잔소리는 귓등으로 듣는 천하태평이 오늘은 어쩐 일일까요?

그러나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할아버지한테로 도망갔다가,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왔거든.”

“아버지한테?”

“아버님이 그러셨대. 공부 안 할 거면 학교도 그만두고, 할아버지 집에도 다시 오지 말라고.

  당신 믿어져? 우리 아버님이 애 등짝을 치시며 호통치셨다는 게.”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봅니다.

언제나 손자 편이고, 누가 무슨 소리라도 할까봐 싸고 돌기 바쁘신 우리 아버지.

애엄마한테도 절대 애 혼내지 말고 철들 때까지 그저 기다리라고 누누이 말해오신 분이니

아내로서는 오늘 일이 믿기지 않겠지요.

물론 저도 좀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누구보다도 엄한 분이셨습니다.

정신 못 차리는 놈은 밥도 먹지 말라는 소리,

공부 싫으면 학교 때려치우라는 호통 소리를 저는 익숙하게 듣고 자랐습니다.

매도 맞았죠.

맞을 짓을 해서 맞았으니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손자를 보시고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셔서 저는 도리어 그 모습이 무척 낯설었습니다.

손자가 보고싶어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나 달려오셔서는,

며느리 잠시 쉬라하고 아이 데리고 공원으로 놀이터로 다니시다가

저녁 식사도 마다하시고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가시던 아버지.

십분 거리에 살게 된 뒤로는, 일하는 며느리 대신 유치원, 학원 라이드를 전담하시며

개구쟁이 손자와 친구처럼 죽이 맞으시던 아버지를 보며,

진짜 우리 아버지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죠.

 


솔직히 서운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저런 분이 어째서 아들인 내게는 그토록 엄격하셨나. 왜 한번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으셨나 싶어서 말입니다.

제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어른들 속을 태우면서부터는 더욱 비교가 되더군요.

공부는 손을 놓고, 게임과 친구에만 정신이 팔려서 매일같이 제 엄마와 전쟁을 하는 녀석인데,

아버지는 언제나 손자 편이신 겁니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 철들기만 기다려라, 공부가 다가 아니다 하시면서요.

때론 제 흑역사를 들추기도 하시지요.

애비가 딱 그랬다. 늦되고, 철이 없었다. 그래도 봐라. 지금 멀쩡하지 않느냐.

 


그런 말씀 하실 때면 저는 웃어야 할지 고개 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겨우 세 식구 밥벌이나 하는 저를 보고 ‘멀쩡하다’ 하시다니.

그토록 평가와 인정에 박하셨던 우리 아버지의 눈높이가 실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니...

 

그나저나, 궁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오늘따라 아버지 심기가 무슨 일로 그리 불편하셨나 싶어서요.

손자를 야단쳐 돌려보내고 지금쯤은 후회하고 계시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아이도 좀 놀랐을 겁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내 편이 ‘배신을 때렸다’고 생각하겠죠.

엄마 잔소리를 피해 달려가면 언제든 두 팔 벌려 받아주시던 할아버지인데 말입니다.

어찌됐든, 아버지께 전화는 한 통 드려야겠다 싶더군요.

잘 하셨다고, 앞으로는 이 녀석 응석 받아주지 마시고 따끔하게 야단쳐주십사 말씀드리려고요.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등뒤에서 아내가 한 마디 하더군요.

 

“아버님이 그러셨대. 네 아빠는 네 나이 때 신문 배달하며 용돈 벌어 썼다고.

  너, 공부하기 싫거든 매일 밤 엄마 아버지 발이라도 씻겨드리라고.”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돌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귓가의 휴대폰 벨소리가 잠시 아득해지며 머릿속에 불이 확 켜졌습니다.

 '아! 그랬구나. 나 때문이었구나.'

 

그저께 동생이 부쳐준 물건을 전해드리러 아버지한테 갔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좀 절뚝였더니, 아버지가 왜 그러냐 하십니다.

현장에서 발을 다쳐, 실금이 갔다고 대답했죠.

반깁스라도 하고 발을 쓰지 않는 게 좋다지만, 일을 하자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그냥 조심하고 있다고요.

그러자 아버지가 제 곁에 무릎 꿇고 앉으시더니 다짜고짜 제 양말을 벗기시지 않겠습니까?

어릴 때는, 그저 혀를 차시며 ‘조심하지 않고...’ 하시던 분이

그 날은 제 발을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시더군요.

발가락 하나가 부어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워낙 여기저기 험하게 망가져 있어서 좀 민망했습니다.

그러데 바로 그 민망한 순간 아버지 마음은 무너졌나봅니다.

철없던 아들이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발이 성할 날 없도록 뛰어다니는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손자 녀석은 제 부모 속을 이리도 썩히는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이지만, 내 아들 등골을 뺀다면 미우셨던 겁니다.

젊은 시절, 아직 익지 않은 생속에, 먹고 사는 일이 바빠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셨나 봅니다.

 

“여보쇼! 너냐?”

한참만에 아버지는 전화를 받으십니다. 언제나처럼,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 어...”

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버벅거렸습니다.

“오늘저녁에 저랑 소주 한 잔 하시죠. 제가 지금 갈게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에서는 뜨끈한 눈물이 솟더군요.

밖이 아닌 안으로, 안으로만 넘쳐흐르는 이 눈물.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흘러가는 눈물이 말입니다.

 

출처 : http://troom.travel.chosun.com/Brd4/bbs/view.html?b_bbs_id=10003&pn=1&num=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