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설說

세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1편

유유(游留) 2016. 3. 5. 00:36

1.     시대의 논리로 생각하자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한일회담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한창 공부해야 할 때였는데 데모를 하느라 수업을 빼먹기가 다반사였다. 아마 그 시절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얘기일 것이다.


당시 대학생들이 한일회담을 반대했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대일청구권 자금의 졸속 청구였다. 일본으로부터 서둘러 돈을 받아내기 위해 정부가 많은 부분을 양보한 굴욕외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고스란히 경제개발에 쏟아 부었다. 선조들의 핏 값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지금 세계1위 철강기업인 포스코이다.


만약 당시 포항제철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기계산업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것이 문제가 되어 말이 많다. 대일청구권 자금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했던 돈인데 국가가 이를 다른데 썼으니 적어도 독립유공자, 강제징용자 그리고 정신대 할머니에게로 돌아갔어야 할 돈이 아닌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시대의 논리로 보자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는 용도로 돈을 다 써버리면 그 돈은 푼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개인에게 얼마씩 보상금이 돌아간다고 해서 나라발전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그 돈을 몽땅 공업발전에 쓰기로 한 것이다. 특히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발돋움 하는 데에는 철의 생산이 시급하다 생각하여 포항제철소를 건립한 것이다


대학졸업 후 정부에 들어가 상공부에 근무하면서, 나는 포항제철이 만들어져 확장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포항체절을 건설하기 위하여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도입되는 모든 시설기자재가 당시 상공부 기업 정책국 산업정책과의 승인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나는 대학생 때 품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근시안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대통령의 생각대로 근대화의 문제는 우리의 생계가 걸려있는 절박한 문제였다. 농사만 지어서는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통령은 먼 10년, 20년을 내다보며 중화학분야의 막강한 기업을 육성하여 수출입국으로 도약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도자의 혜안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 때 박대통령이 ‘이 돈은 조국을 위해 피 흘린 분들의 돈이니 그분들에게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과연 지금의 경제성장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한 지도자의 결단이 나라의 미래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난다면 지도자들은 당연히 피해 당사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옳다. 하지만 박 대통령 시대에는 그렇게 허무하게 그 돈을 써버리면 안된다는 논리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그 논리가 맞았던 것이다. 


박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우리 경제의 분배구조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을 한다. 그는 포항제철뿐만 아니라 현대, 삼성, 대우 등 대기업 위중의 기업정책이 펼쳤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시작되었고, 개발독재로 인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고, 불평등한 분배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말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 정치가 사회 구석구석을 골고루 챙겼다면 지금의 눈부신 성장이 가능했을까. 그때 필리핀은 아시아의 선진국이었다. 남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경제규모는 물론 군사력도 북한이 남한보다 한 수 위였다. 그렇게 거의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빈곤했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모든 국민들을 다 잘 살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겠는가.

한마디로 당시의 시대 논리는 분배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 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막 독립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사 기자가 쓴 기사 중의 일부이다. 그렇게 가망 없는 나라로 분류됐던 우리가 불과 50년 만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완성하였다.1945년 이후에 새로 생긴 국가가 100개국 이상인데 그 중에 OECD에 가입하고 소득 2만 달러에 가까워진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처럼 무서운 성장의 기본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불균형 성장 정책’이었다. 그는 모든 국민을 다 챙기면서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큰 몇 개 분야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하여 국력을 키웠다. 그리고 걸림돌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제거했다. 그래서 재벌이 나오고 관치경제가 나오고 정경유착이 나왔다. 그래서 독재가 나오고 인권유린과 양극화 현상이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불균형 성장정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아졌을까?


지금 이 불균형 성장이론을 중국은 물론 동남아의 여러 나라, 그리고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까지도 연구를 하고 있다. 한때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던 이들이 왜 뒤처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세계에서 유래 없는 고속 성장을 했는지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고 인권유린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사실만으로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을 부정하고 무의미한 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가 독재를 한 이유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였다면, 그건 돌을 던져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독재는 모두 나라의 근대화에 맞춰져 있었다. 빨리 성장해야 하는데 어떻게 전 국민의 비위를 다 맞출 수 있었겠는가.


과거의 모든 잘못을 다 덮어 버리자는 뜻은 아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피해를 당한 개인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연히 국가가 사과하고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이니까 가능한 논리이다. 2008년, 지금 그 논리가 맞다 해서 60-70년대의 과거까지 무조건 엎어버리면 안 된다.


역사는 언제나 과거의 일을 평가하는 것이고, 그 평가의 잣대는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바뀐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만 해도 한 때는 계급주의적 사관으로 평가되었다가 지금은 영웅주의 사관으로 재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이처럼 시대정신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않은 것, 필요했던 것과 불필요했던 것이 시대에 따라서 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시대의 논리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눈에 한국의 과거사는 너무나 부당하고 심지어 한심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의 논리가 있었다.

우리는 보릿고개를 겪었고 새마을 운동을 겪었고 산업화와 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어떻게 해서든 가난에서 탈출해보자며 몸뚱이 하나로 덤비던 시절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먼저 간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과인 것이다.


맹자는 모든 것을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라고 했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 어머니를,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들이 겪었던 시대의 모든 고난과 역사의 발전을 역지사지해보기 바란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중에서  /  서사현 지음]


http://cafe.daum.net/uusanbang  유유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