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설說

세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3편

유유(游留) 2016. 3. 7. 23:37

3 석세스 스토리를 만들자

 

 

     요즘 너도나도 양극화에 대해 말한다. 소득양극화, 부동산양극화, 교육양극화, 고용양극화 등 양극화와 관련한 이슈가 수없이 많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돌아보아도 온통 양극화 이슈가 논란이었다. 누가 양극화를 해결할 후보인가,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를 두고 후보들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상위 1%가 대한민국 전체 토지의 57%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에 분노하지 않을 서민은 없을 것이다. 20%의 상류층이 전체 부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에 화나지 않을 80%도 없을 것이다. 특히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백수이거나 생계에 곤란을 겪는 등, 자신의 현재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분노가 증오로 바뀌기도 쉬울 것이다.

이처럼 분노한 서민을 대상으로 정치인들은 무슨 말을 하는가? 여러 후보들이 이 80%를 선동하는 말을 하고 다녔다.

 

‘** 당의 경제 정책은 상위 소득자 20%만을 위하고 나머지 80%는 버리는 정글 자본주의 ’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또 어떤 후보는 이런 공약을 하기도 했다.

 

‘왜 대기업만 잘 사냐?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는 국가를 만들겠다. ’

 

또 한 정당의 간부는 실업계 학생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20% 만 일류대학에 가고 80%는 못 가는 건 사회구조적 잘못이다. 우리가 너희들의 응어리를 반드시 풀어주겠다’

서민들은 이런 말과 작전에 쉽게 현혹된다.

 

‘부자들한테 세금을 왕창 걷어서 잘 살게 해주겠다. 중소기업 직원들도 대기업만큼 월급 받게 해주겠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동등하게 사는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생산수단을 공동화하고 국가에서 다 컨트롤하면서 분배를 공평하게 하면 100% 가 똑같이 잘 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워졌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노동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 하나로 대중의 피를 끓게 하여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 만든 나라가 소련연방이 아니었던가 그 소련이 어떻게 되었나? 완전히 무너져 해체되고 말았다. 모두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상주의로 건설한 국가인데 실헝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감독이 있어야 하고, 조직의 장이 있어야 한다. 결국 또 계급이 만들어진다. 노동자들이 이게 뭐냐고 불만을 가지려고 하니 체제전복이라며 탄압을 한다 .결국 지배 권력의 독재로 가는 것이다. 새로운 ‘프로레타리아 독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100%가 잘 살아야 한다는 건 우리의 이상적 환상이다.100%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했던 모든 나라들이 결국은 모두가 못 살게 되었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개성에 가면 6-70년대 김일성이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지어준 집들이 지금은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어버이 수령님이 지어주신 집이라며 당시에는 그렇게 자랑하던 집들이 지금은 흉가가 되어버렸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모스코바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야 집을 보수하고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할 것이 아닌가 모두 잘 사는 평등사회의 실현은 이론만 거창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평등사회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생활수준을 똑같이 맞추는 것이 진짜 평등사회일까?

 

고기 먹던 사람을 나물 먹게 해서 다 같이 나물 먹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평등사회일까? 잘 사는 20%를 못 사는 80%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평등사회인가? 그렇게 사회를 하향평준화 시킨다면 누가 무슨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는가?

 

진정한 평등사회는 기회가 평등한 사회이다. 지금은 80%에 속해 있더라도 노력만 하면 20%로 올라갈 수 있고 1%도 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평등사회 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80%중의 많은 사람들이 계속 20%에 진입해서 나중에는 20%가 30%가 되고,30%가 40%,50%로 확대되는 것이 이상사회가 아니겠는가.

 

50-70년대에는 등록금이 없어서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며 학비를 벌었던 가난한 고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해서 공무원도 되고 대기업 CEO도 되고, 그 중에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라간 사람도 있다. 이런 석세스 스토리가 있는 사회가 기회가 열려있는 사회이고, 바로 이런 신화가 희망이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미국은 수없이 많은 석세스 스토리를 갖고 있는 나라다. 석세스 스토리가 국가적 자산일 정도이다. 카네기에서부터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웅들의 성공 스토리가 책으로 비디오로 영화로 만들어져 온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기회의 나라, 평등한 나라라는 증거이다. 그런데 소련에 어떤 석세스스토리가 있었던가? 북한에 어떤 석세스 스토리가 있는가?

 

정치가 국민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이들을 80대 20으로 갈라서 달콤한 마약을 주어서는 안 된다. 80%를 위해 돈을 주겠다, 일자리를 주겠다, 약속을 하는 것은 그들더러 평생 80%로 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정말 위한다면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그들도 20%가될 수도 있고 더 노력하면 10%, 아니 1%로 올라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가능성의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이다.

 

정치는 우매한 대중을 일깨워서 그들을 사람답게 살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은 기본적으로 우매하다. 그래서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우매한 대중을 이끌며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은 오히려 우매한 대중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

 

가장 적절한 예가 몇 년 전 주5일제 근무 시행과 관련, 전 국민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하는 것이다. 해보나마나 뻔한 것 아닌가. 대다수가 근로자 인데..... 심지어 그 우매함에 기대어 표를 얻어내려고 한다. 우매한 대중을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대중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80대 20의 사회에서 20%는 우리의 희망이고 기회이다. 20%는 우리사회의 석세스 스토리며 우리가 모델로 삼고 따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미워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래도 수구꼴통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중에서.. / 서사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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