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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彌勒堂(숙 미륵당)

유유(游留) 2016. 5. 26. 20:49

찬 날씨에 해묵은 주막에 드니      天寒宿古店(천한숙고점)

 

나그네 밤 마음 외롭기만 하네      歸客夜心孤(귀객야심고)

 

불 꺼도 영창엔 눈빛이 밝고         滅燭窓明雪(멸소창명설)

 

베갯머리 화로에선 차가 끓는다    然茶沈近爐(연다침근노)

 

밤 깊자 마구간서 말발굽 소리      深更知櫪馬(심경지력마)

 

종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듣네    細事聞鄕奴(세사문향노)

 

달 지고 첫닭이 소리쳐 운 뒤        月落鷄嗚後(월낙계오후)

 

다시금 유유히 길에 오른다          悠悠又上途(유유우상도)

 

 

신광수 / 宿彌勒堂(숙 미륵당)

 

 

 

 

신광수의 <미륵당에서 묵고 > 란 작품이다. 북풍한설에 하루 노정을 마치고 꽁꽁 언 채 절집을 찾아들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 뒤 객방에 앉았자니 마음을 가눌길 없다. 잠을 청하려 등불을 끈다.

 

외로움은 꺼진 등불과 함께 사위어지지 않고, 창밖 환한 눈빛에 도로 환해진다. 윗목 화로의 주전자가 달그락 대더니 모락모락 김이 솟는다. 발갛게 불을 지핀 방안의 화로, 하얗게 비치는 창밖의 눈빛, 자리에 눕고 나서도 그는 종내 잠을 못 이룬다.

 

추위를 못 견딘 마구간의 말은 연신 발을 구른다. 춥고 배고프니 여물을 더 달라는 투정이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일이야 언제나 그렇지. 두런거리는 중에 새벽달이 지고 닭이 운다. 여물을 든든히 먹이고 안장을 조여 다시 길을 떠난다. 여명은 아직 트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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