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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夕

유유(游留) 2016. 7. 5. 22:22



秋 夕

 

 

 

은촉불 가을빛에 그림 병풍 차가운데     銀燭秋光冷畵屛(은촉추광냉화병)

작은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누나        輕羅小扇撲流螢(경라소선박류형)

하늘가 밤빛이 물처럼 싸늘해도           天際夜色凉如水(천제야색량여수)

견우와 직녀성을 오도카니 바라보네       坐看牽牛織女星(좌간견우직녀성)

 

 

당나라 두목의 [가을저녁 秋夕]이다. 가을밤의 애상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방 안에는 은촉불이 타고 화사한 그림 병풍이 둘려 있다. 그녀는 손에 가벼운

비단 부채를 들었다. 한눈에도 매우 넉넉한 귀족풍의 규방이 떠오른다.

제목을 ‘가을저녁’이라하고, 3구에서 밤빛이 물처럼 싸늘하다 해놓고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고 했으니 앞뒤가 안 맞는다.

 

‘가을 부채’는 한시漢詩에 으레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한다. 부채는 더운 여름날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힌다. 마찬가지로 한때 내게 그토록 다정하던 임은 어느덧 나를 까맣게 잊고 돌아보지 않으신다.

 

시인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을 부채’를 손에 쥐었다는 말만 가지고 이미 그녀가‘임에게 버림받은 여인' 임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홀로 지새우는 깊은 가을밤, 달마저 져버린 창가로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옛사람은 풀이 썩어서 반딧불이가 된다고 믿었다. 반딧불이는 황폐한 풀덤불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이다. 그 반딧불이가 그녀의 창가를 난다고 하여 지금 그녀의 거처가 얼마나 황폐하고 황량한지를 말했다. 임이 찾지 않는 꽃밭엔 잡초만 우겨졌다.

 

그녀는 반딧불이를 부채로 후려침으로써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처량함과 황량함을 “저리 가!” 하며 몰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녀는 엄연한 현실을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물처럼 싸늘한 하늘은 밤이 어느덧 깊었음을 말한다.

앉아서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는 아예 잠 잘 생각을 버리고 근심에 겨워 긴긴 가을밤을 새우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무슨 별을 보고 있나.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그들은 그래도 일 년에 칠월 칠석 하루는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신세는 어떠한가 . 임은 한 번 떠나신 뒤 돌아올 줄 모르고, 이 기나긴 기다림이 끝없이 이어져도 임을 다시 만날 날은 영영 올 것 같지가 않다. 이러한 초조감과 절망감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 위에 서리어 있다.

 

 

한시미학산책 / 정민 지음.130- 131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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