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좀 손해 봐도 죽지 않는다

유유(游留) 2019. 5. 18. 22:09

좀 손해 봐도 죽지 않는다

 

 

 

시인 안도현은 일갈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런 말을 들으면 숨이 턱 막혔다가 다음 숨에 밀려 컥 하고 토해내야 간신히 숨이 쉬어진다.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다.

 

받는 것에 익숙하고 주는 것엔 어색한 삶,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아등바등 기 쓰는 삶, 그게 더 가깝게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을 마감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걸 알면서도 순간순간에는 또다시 뭔가 움켜지겠다고 버둥댄다. 우리의 뇌는 왜 이다지도 짧은 순간에 포맷이 되어버린단 말인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운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달리기를 아주 잘했다. 운동회가 열리면 보통 여덟 명이 함께 순위를 겨뤘는데 아이들이 나와 함께 뛰는 걸 꺼려할 정도였다. 1위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부도 당당하게 가을 운동회는 나를 위한 행사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달리기 순서가 되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주형아, 이번 달리기는 ○○이랑 같이 뛰어줄래? 그 녀석이 원래 달리기를 안 하는데 내가 한번 뛰어보라고 했다. 너는 잘 달리니까 ○○이랑 함께 뛰어주면 큰 힘이 될 거야.”

 

청천벽력이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초등학생에게 선생님은 하늘같은 존재였으니 그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같은 반이던 그 친구는 뚱뚱하고 몸이 약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였다. 나는 5년 동안 그 친구가 달리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체육시간이든 운동회를 하든 그 친구는 늘 한쪽 구석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총소리가 울리자마자 함께 서 있던 친구들은 냅다 뛰어나갔다. 나는 잠시 선생님의 부탁을 어기고 힘껏 달려 나갈까 생각했지만 약속대로 그 친구와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춰가며 뛰었다. 아니 아예 걷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달리면서 보니 내가 당연히 1등할 것으로 알고 골인지점에서 사진기를 들고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놀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몇 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겐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나중에는 박수소리도 들려왔지만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서 시간이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결국 서너 번은 왕복했음직한 시간이 걸려 골인지점에 들어왔다.

그 친구는 골인을 하자마자 땅에 엎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정말 잘했다며 그 친구를 격려했다.

 

나는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와 학교 본관 뒤로 향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화장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마음에 그토록 기다렸던 달리기 우승을 놓친 것이 몹시 서운했던 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이었다.

 

“고마워. 수고했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선생님은 내게 1등 상품을 따로 준비해서 안겨주셨다.

 당시엔 선생님이 몹시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덕분에 평생 친구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그 친구는 내게 소중한 친구로 남아 있다. 불행히도 나는 학창시절을 통틀어 그다지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다. 하지만 내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신 최봉환 선생님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여드름투성이의 총각 얼굴 그대로 내 마음속에 각인돼 있다.

 

내가 필요해서 혹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이타주의라도 상관없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을 지라도 그것을 한번 감수해보자. 그러면 그 후에 얻는 이익은 단순히 “손실”과 “이익”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가치로 다가온다.

 

당장은 ‘왜 항상 나만 양보하고 손해를 봐야 해?’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비록 손해를 보았지만 덕분에 다른 누군가가 이익을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가령 돈 10만 원을 잃어 버렸다고 해보자. 그러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소연하지 말고 나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가, 그 돈이 꼭 필요한 누군가가 요긴하게 썼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관대함, 너그러움이 쌓이고 또 쌓이면 개인의 인격이 되고 나아가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이 사회를 지탱해준, 혹은 지탱해주다가 떠난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한경직 목사 같은 분을 떠올려보라 내가 잘나서 나 혼자의 노력으로 내 입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고 따뜻한 잠자리에 누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 사회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없다면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그들처럼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비록 작고 소소하더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어보라는 거다. 연탄은 온몸으로 타올라 온기를 주다가 재가 된 후에는 산산이 으깨져 미끄러운 길에 깔린다. 마지막 한 줌까지 도움을 주고 떠나는 것이다. 설사 온몸을 던지지 않아도 그런 마음만으로 아름답다. 마음이 있으면 작은 실천은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우익님의 저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의 제목은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가슴을 저민다.

 

나무는 사람처럼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차가운 겨울을 코앞에 두고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에게 돌려주고 빈손으로 겨울을 맞는다. 시린 겨울 동안 모진 풍상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다 내려놓는다. 그리고 온몸으로 겨울을 인내하고 화장한 봄날에 다시금 깨어나 우리에게 푸르름을 선사한다.

 

세상에는 길바닥에 나딩구는 연탄재만도, 이름 없는 어느 야산의 헐벗은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삶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일이 두렵다. 마치 인간이 얼마만큼 악해질 수 있는지 경연대회라도 하는듯한 추악한 뉴스 퍼레이드를 보면 이 시대에 호흡하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뉴스를 보며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야’하고 생각하게 될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

 

 

 

 

- 평생 갈 내 사람을 남겨라- / 이주형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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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ㅎㅎ

 

 

 

첫째 이야기..

 

 

문득....

 

윗 글을 읽다가 어린 시절 저와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들을 생각을 해봅니다.. 겨우 기억이 나는 3분 선생님... 아니 한 분 더 있습니다..

 

저 어릴 때는 교실 한 복판에 조개탄을 때는 난로가 있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알루미늄 바께스..(양동이 라고 하는데 그냥 옛날식으로 바께쓰로 했습니다.. 일본 말인데..)를 들고 친구와 같이 조개탄 창고로 달려갑니다.. 아마 .. 그 친구가 당번이었는데 몸이 약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창밖을 내다보며 망설이는 모습이, 눈이 많이 오니 이 친구가 그 한 양동이를 들고 올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았나 지금 생각을 합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 뭔 힘이 있겠습니까..

 

선생님과 그 친구가 밖을 기웃거리면서 망설일 때.. 그냥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니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양동이를 들고 교실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친구와 같이 조개탄을 한가득 담아서 낑낑거리면서 교실에 들어와서 난롯가 옆에 놓고 나니 그 선생님께서 저의 조그만 손을 꼭 감싸 쥐면서 송면이 가 최고다.. 그랬습니다..

그때 선생님 손이 무척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기억이 남습니다..

최순이 선생님....

 

그리고..

5학년 때.. 남자 선생님.. 송영중 선생님..

 

그 분의 도시락은 늘 화려했습니다.. 우리 모두 가난하게 살던 때였는데.. 뭐 그 선생님의 도시락 반찬이 고기반찬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요새 말로 하면 웰빙 반찬인데.. 상추.. 깻잎..양배추...등등.. 도시락의 밥 보다 반찬통이 더 큰.. 찬합에다 싸오셔서 그 많은 풀?..들을 오랫동안 드시던 그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운동회 때 응원가를 가르쳐 주셨는데.. 가사가.. ..

 

중략.. 고목에도 잎이 피고.. 벌 나비도 찾아오는데.. 한 번 가신 우리 님은 왜 아니 오나요....후략.

 

초등학교 5학년짜리 머릿속에 고향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생각이 나면서 그 고목에 잎이 피면 연초록의 여린 잎과.. 따뜻한 봄날.. 멀리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는 황톳길 옆으로 미루나무...

그 아래로 맑은 개울이 흐르고 나비가 둔덕에 핀 이름 모를 들꽃 위를 팔랑거리면서 날라 다니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더군요..

 

가을 운동회 때 응원가로 배운 제목도 모르는 노래인데 딱 두 구절 가사내용에 갑자기 봄날의 아련한 고향길이 왜 생각이 났을까요.. 뭔가 모를 쓸쓸함도 있었고..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고독..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지금도 생생히 그 머릿속의 광경을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그 노래와 인상 깊었던 도시락으로 해서...ㅎㅎㅎ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 김명희 선생님..

 

변성기 전 인데..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치고는 높은 바리톤의 음색을 가졌다고 성악을 공부를 하라면서.. 늘 챙겨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성악을 하라는 것을 뿌리치고 기어이 밴드부로 갔습니다.. 그때는 성악보다는 화려한 마칭밴드가 더 마음에 끌렸으니..

 

악대부가.. 원래 좀 거칠지요.. 어느 학교나..

2학년 올라오면서 담배를 배우고.. 일진들이라고 하나요?.. 어울려 다니다가 학주에게 걸려서 교무실에서 혼나고 꿇어 앉아 있는데 그 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니가 왜 이러냐 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참. 그때 미안하고 부끄럽고 ..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무안도 느꼈고.. 처음으로 인간세상의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살면서 몇 번 더 그랬지만...

지금도 그 선생님의 하얀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 홍... 뭐시기 선생님.. 왜 뭐시기 라 하느냐 하면 .. 이 선생님만 생각하면 지금도 욕이 나와서요..ㅎㅎㅎ 이름 석 자 분명히 기억을 합니다 만은 그 선생님 인격을 생각을 하여서... 가명처리 합니다..

 

몇 분 선생님을 제 마음속에서 말아먹게 한 대단한 선생이었지요..

그렇게 저는 지옥 같은 고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 어릴 때 선생님들을 생각을 해 봤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참.. 세상이 포악해 졌지요..

예전에 맹,공자 시절에서도 젊은 사람의 예의 없음을 탓하는 글들이 있더군요..

어느 시절이던 젊은이들의 끓는 피를 나무라는 어른들은 항상 계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의 맥을 이어왔고요..

하지만.. 지금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합니다..

 

세상엔 돈을 제부모로 혹은 성인(부처님,하느님)으로 심지어 제 자식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 말종들도 있습니다..

 

돈.. 좋지요.. 내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 앞에 내 못난 모습을 숨길 수 도 있고..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아도 되고..

 

하지만..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너무 허무한게 이 종이 쪼가리이지요..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때리고 .. 심지어 살인 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식이란 놈이 부모가 죽어 부조금 들어온 것을 내 들고 도망 가버린 쓰레기들도 있고..

제주도 여행가자고 하면서 제주도 이름도 모를 곳에 버리고 내빼는 자식 놈도 있습니다.

 

하나 같이 불쌍한 종자들이지요.. 종자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쓸 만한 종자와 그렇지 않은 종자가...

 

공자가 그랬다지요..

 

같은 행위를 했는데 어떤 때는 그 행위를 한 자를 불러 나무라고.. 어떤 때는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지나치고.. 그래서 제자 안회가 물었답니다.

 

왜 그러시냐고..헷갈리게..

 

공자왈... (아... 이럴 때.. 쓰라고 공자 왈 이구나...ㅋㅋ)

 

[꾸짖어서 될 놈은 꾸짖고.. 꾸짖어도 안 될 놈은 안 되기에 괜히 입만 아프게 뭐 할라꼬?... ]

 

뭐 그랬답니다..

 

공,맹 시대에도 말종들은 있었나 봅니다. 아마 그 종자들인가 봅니다..

그 씨가 그 씨 이니......ㅎㅎ

 

 

 

세 번째 이야기

 

언젠가.. 택시를 탔습니다.

술이 기분 좋게 한잔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고요..

 

집에서 너댓 정류장 거리에서 친구와 기분좋게 한 잔하고...

걷기가 싫어서 택시를 탓습니다.

 

집 앞에 내리면서 지갑에서 5천원 권을 내어서 주었습니다. 기본요금이 2200원 할 때이니.. 반 남습니다.. 잔돈을 받을까 하다가 .. 나는 그래도 이 기사양반 보다 형편이 조금 나으니..저녁에 친구 만나 좋은 술 먹고 집에 들어오는데.. 저는 밤에 고생을 한다.. 싶어서..

그냥 담배나 사 태우시오. 하고 내렸습니다.. 기사가 고맙다는 소리도 없고 그냥 잠시 받은 돈을 들고 주춤 하더니 차문을 닫아 주니 그냥 홱 가버립니다..

 

 

기분 좋게 집에 와서 잘 자고 ...

다음날 돈 쓸 일이 있어서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원짜리 10장 중 한 장이 모자라더군요.. ㅎㅎ

어제 밤에 준 그 오천 원이 오만 원 이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기사가 움찔 했던가 봅니다..

 

순간 아깝고 기분이 나쁘고.. 30초에서 일분 정도 그랬을겁니다..

잠시 소파에 앉아..

 

그래.. 나보다 형편이 못한 듯하니..그 돈으로 통닭이라도 한 마리 튀겨서 애들 하고 먹어라..

그 생각으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울컥 올라오던 덩어리가 갑자기 스르륵 녹아버리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나는게..

그 친구..

어제 저녁에 그 돈 받아서 갔을 순간엔 기분이 좋았겠지만..

잠시 뒤에 자기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까... 참 마음이 편치 않을텐데...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 친구가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도 오만 원 짜리를 보면 그 편치 않은 마음이 생각이 나지 않을까.. 한 동안은..

 

측은 했습니다..

 

 

 

오늘 저녁..

무거운 책을 읽다가 잠시 쉬려고 가벼운 책을 들었습니다. 뒤적뒤적 넘기다 보니 이 글이 눈에 들어와서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글자가 자꾸 많아집니다.. 쓸데없이..

 

퇴근하고. 내내 노자사상을 읽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고 또 읽고.. 결국 서너 시간 만에 항복을 하고 머리를 식힐 겸...

 

사설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하늘이 얼기 시작합니다...

힘든 사람들은 더 힘든 계절이 옵니다.. 산방회원님들 마음속이 한여름 같은 마음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가 차고도 넘칩니다.. 술도 먹지도 않았는데..

 

이 저녁에.. 하늘에 달이 점점 차 올라옵니다..

일월영측(日月盈昃)이라.... 세월은 차고 기울어지고..

그 속에서 많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편한 밤 되십시오..

 

 

13년 11월 12일 축시 행복하우스 203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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