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출근

유유(游留) 2017. 7. 23. 15:29

출근

 

 

새벽 강가 안개 속에서 만난 직박구리 한 마리 .... 고운 목소리로 울지 않아도 좋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무심한 듯 서로 바라보며 두 바퀴의 살이 구르는 소리를 듣는다.

 

출근 길...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간밤의 더위를 떨쳐 버리려는 듯 그렇게 자전거를 몰아 강가로 달려 나왔다. 주말의 새벽 이라 조용 할 줄 알았던 거리는 폭염의 열대야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 연신 차들이 옆을 씽씽 지난다.

 

찻길을 벗어나 낙동강 길로 접어들어 얼마간 달리니 물안개피어 아련한 강가 키 작은 나무에 금방 자리에 앉은 듯 직박구리 한 마리 ..

 

이 강 길을 따라서 너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아침이다. 새와 사람 서로 가는 길 멈추지 않고 조용히 옆을 지난다. 간밤에 작은 곤충들과 벌레들이 자전거 길 위에서 생을 마감을 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적지 않은 작은 생물들이 길 위에 널려있고 그것을 먹기 위한 새들의 활동이 부지런하다. 봄에 부화된 작은 새들도 그 속에서 활발하리라..

 

대구의 여름은 참 덥다. 강가로 나오기 전에는 새벽바람도 뜨듯했다. 하지만 큰 강의 옆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출근길로 바쁜 시간이지만 잠시 길가 쉼터에서 흐르지 않은 듯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요동을 치던 피들도 잠시 기운을 떨구고 조용히 몸을 기다린다. 머릿속이 맑아지니 육신도 새로운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참 평화로운 새벽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길고 긴 강 길은 천천히 더 천천히 그렇게 간다.

오늘 아침에 이렇게 출근 하여 일. 당직24시간을 하고 내일 아침 다시 이 길로 집으로 갈 것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늘 해 오던 달력의 계획들을 모두 지웠다. 아니 이 여름에는 계획 자체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계획 데로 되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이제는 달력에 이런 저런 일들을 적어 놓지 않는다.

그냥 되는 데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하기로 하였다.

 

작년 재작년부터 계획을 한 동해안 종주, 제주종주 그리고 여러 행사들을 이제는 모두 포기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새벽에 잠 깨어 잠시 생각 끝에 호기롭게 자전거를 들고 나왔다..

집 밖을 나서면서 괜한 일을 했나 머뭇거렸지만 넓은 강 길로 들어서니 얼마나 탁월한 선택을 한건지 나만 알 수가 있었다.

이 여름 나는 이런 계획 없는 일들을 자주 할 것이다.

더운 여름 대구의 날씨를 이기려면 ... 내 몸속의 잘 못 된 상황도 이기려면...

 

인생....

내 맘 같지 않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롭다.

 

내일 아침 다시 강가의 작은 나무 잎 사이로 초롬히 앉은 직박구리를 또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들뜬 마음이 종일 이어진다....

좋은 아침이다.. 또 행복한 아침이다.

온 종일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2017년 7월 22일 토요일 당직 하러 가는 날 새벽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