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밥벌이..

유유(游留) 2016. 4. 8. 11:44

밥 1

 

...중략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은 없는 것이다.

 

  모든 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있어서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p70-73 2015. 9.21]

 


 

 

이빨 한 두 개만 치료를 하면 되겠다던 의사가 잇몸을 절개를 해 놓고는 하는 소리가 ..

 

『어이쿠 생각보다 마이 상했네요.. 이쪽 뒤편의 어금니하고 그 옆 에도 수술을 해야 겠심다..』

 

결국 가볍게 들어선 치과에서 어금니부터 송곳니까지 4개의 치아가 걸린 잇몸의 뼈를 갉아 내고 인공 뼈를 심는 대수술을 하였다.

 

덕분에 그날 밤에는 통증으로 자다깨다를 반복을 하였고 아침에는 입술의 피가 말라붙어 입을 열수가 없을 정도였다. 2일째부터 피가 멎고 연 이틀 맞은 항생제 주사의 부작용으로 두드러기가 나서 온 몸을 긁어 댄다. 사나흘 그렇게 퉁퉁부은 얼굴과 멀건 죽으로 연명을 하다가 보니 이제는 치아의 아픔 보다 그렇게 잘 먹던 위장이 들고 일어난다. 배고파 죽겠다고...

 

입안을 온통 헤집어 놨으니 입맛은 당연지사 따지지 않지만 위장은 멀쩡하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어쩌랴.. 그동안 피둥피둥 찌운 살들 이번 기회에 좀 빼자는 머릿속의 명령에 그냥 맑은 침만 꿀떡꿀떡 삼킨다..

 

입과 위장과의 사소한 다툼을 머리가 정리를 하고 나서 이런 상황을 좀 더 품위 있게 진정시키려 책을 집었다.

 

이리저리 펼쳐보다 평소 존경하던 김훈 선생의 라면을 끓이며 라는 책이 손에 잡혀 ..

 

「밥1」 이라는 소제목에서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딱 맞는 말이다.

 

30년 직장생활을 한 나로서는 이 글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술을 먹고 난 뒤의 밥.

격정적? 으로 한바탕 부부싸움 뒤의 밥(밥차림)

부모님걱정 애들 걱정이 반찬이 되어버린 밥

지금처럼 원치 않은 입속 리모델링으로 인한 밥(죽?)

 

밥은 내 삶의 근원이자 생명의 뿌리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지만 간단하게 말한다면 그냥 묵고 사는 일이다.

 

김훈 선생이 말 하려는 밥을 오전 11시 지금 적당히 고픈 배를 달래며 생각을 해 본다.

 

나에게 진정 맛있었던 밥이 언제였던가..

삶의 진솔한 밥맛을 알고 행복 했던 게 언제이던가..

아침 출근 때 챙겨준, 책상 한쪽 옆의 봉투 속에 담긴 죽 통을 본다..

 

밥이라....

 

 

2016. 4. 8 [김훈 산문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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